충주중앙탑초등학교 로고이미지

인성교육

RSS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네이버밴드 공유하기 프린트하기
우리고장의 자랑스런 인물(우륵)
작성자 임은영 등록일 12.11.07 조회수 465

◎ 우륵

▸인물 구분 : 음악가

▸시대 : 신라시대

▸출생지 : 대가야(경남 고령)

▸관련유적 : 충주시 칠금동(탄금대)

충주시 호암동(우륵당)

충주 우륵 문화제

 

 

 

우륵은 가야의 음악가로 신라에 망명하여 국원(國原 : 지금의 충주)에 살면서 가야금을 전승시킨 악성(樂聖)이다. 가야의 가실왕(嘉悉王)이 당(唐)나라의 악기를 보고 모방하여 가야금(伽倻琴)을 만들고, “여러 나라의 말이 각기 다르니 소리가 어찌 똑같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하며, 우륵(于勒)에게 명하여 12곡(曲)을 짓게 하였다고 한다. 우륵은 가야국이 장차 멸망할 것을 알고 가야금을 갖고 제자 이문(尼文)과 더불어 신라로 귀화해 왔다. 진흥왕은 이들을 국원(國原)에서 편안히 살게 하였으니 지금의 충주이다. 진흥왕 12년(551) 3월에 왕이 직접 나라 안을 돌아보다가 낭성(娘城 : 충주)에 이르러서 우륵과 그 제자 이문이 음악을 잘한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불렀다. 진흥왕은 우륵의 연주를 듣고는 깊이 감동되어 이듬해인 13년에 대나마 계고와 법지, 그리고 대사인 만덕 등 세 사람을 우륵에게 보내어 가야금을 전하여 배우도록 하였다. 가야금은 가야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진흥왕의 의지와 우륵의 정성으로 신라의 음악으로 발전하여 오다가 오늘에는 국악으로 이어져 오게 된 것이다. 충주의 탄금대는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다고 하는데서 유래한 지명으로 충주의 명승지이다. 충주지역에서는 우륵과 가야금의 고장으로서의 의미를 깊이하기 위하여 1971년에 우륵문화제를 시작하여 매년 10월에 행사를 하고 있으며, 1977년에는 『악성우륵선생추모비』를 탄금대에 세웠으며, 1995년에는 호암지 옆에 우륵당을 세워서 가야금의 전승 보급을 위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펴나가고 있다. 이와 같이 전해오는 여러 이야기는 우륵이 충주지역에 살면서 이 주변을 왕래하며 가야금을 연주하였던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전글 우리 고장의 인물 자료
다음글 우리고장의 자랑스런 인물(박팽년)